소장자료 조회
| 등록번호 | 구입 366 |
| 명칭 | 사문유취초 권2 |
| 이명칭 | 事文類聚抄, 사문유취, Samunyuchicho |
| 국적 | 한국 > 조선 |
| 시대 | [19세기.] |
| 작가 | - |
| 재질 | 종이 |
| 크기 | 가로 19.0cm, 세로 28.3cm |
설명
중국 고금의 역사적 사실과 시문을 내용에 따라 분류한 유서(類書). 목판본. 1책. 권수제 事文類聚抄, 제첨제 事文類聚. 총 35장. 송(宋)의 축목(祝穆)이 중국 상고(上古)에서 송대(宋代)까지의 모든 서문을 모아 분류한 <사문유취(事文類聚)>를 원대(元) 부대용(富大用)과 축연(祝淵)이 원(元)의 중앙 및 지방의 관제 등을 보충하고, 명의 당부춘(唐富春)이 교정한 일종의 백과사전. 분량이 방대하여 보급판(요약본)이 성행하였고, 과거시험을 위한 학습용 내지 일상 공구서로 널리 활용됨. 표지 오염 및 박락 심함.
해제
백과사전식 중국 유서(類書)로 유명한 『사문유취(事文類聚)』의 요약본. 『사문유취』는 초기(宋代)에 전집, 후집, 속집, 별집으로 구성하여 편찬된 이후 원나라 때 신집(新集)과 외집(外集)이 추가되었고 다시 유집(遺集) 15권을 보충하였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라 했고, 원나라 때 증보본이 나와 『신편고금사문유취(新編古今事文類聚)』라 불렀다. 이를 편의상 『사문유취』라고 부른다. 동아시아 ‘유서’를 대표하는 책으로, 과거제도를 시행한 조선에서는 ‘공부’를 위해 더욱 널리 보급되었다. 또한 각종 조선 유서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미 15세기에 중앙관청에서 금속활자본(갑인자본, 갑진자본)으로 간행 보급하였고, 이후 조선후기에는 다양한 상업출판본(목판방각본)들이 나왔다. 특히 조선에서는 주자(朱子)의 문하에서 편찬된 송대『사문유취』(고금사문유취)가 널리 보급되었다. 그러나 분량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보급판(요약본)이 성행하는 가운데 과거시험을 위한 학습용 내지 일상 공구서로 널리 활용되었다. 『사문유취초』, 『사문초』, 『사문유초』, 그리고 신구서림에서 1913년에 새롭게 판각해서 찍은 『상교사문유초』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기본적으로 송대의 『고금사문유취』를 초집(抄集)한 것이다. ‘방각본’의 기준에서 보면 완판본과 경판본이 전하고 있는데, 경판본은 “庚午孟夏武橋新刊”이라는 간기를 가진 19세기 서울 무교동 간본(전3책)이 있다. 완판본으로는 이른바 태인본(전3책)이 전하는데, 전이채(田以采)와 박치유(朴致維)가 간행한 “己未開板”본이 그것이다. 이밖에 전주에서 간행한 이른바 ‘七書房’본도 있으나 이것은 이전의 무교간본(경판본)의 판목을 갖고 1917년에 전주에서 다시 인출한 판본이다. 경판본 판목을 인수하여 전주에서 재간행, 판권지만 붙여서 유통한 것이므로 완판본으로 간주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그리고 신구서림본(1913년) 『상교사문유초』는 새로운 형태의 경판본이 되는 셈이다. 본 해제본은 권2 한 책만 남아 있고 간기 등이 없으나, 그 판각 형태로 보아 전이채, 박치유가 간행한 태인방각본의 잔존본이다. (집필자: 양승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