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조회
| 등록번호 | 구입 405 |
| 명칭 | 용성지 권1~11 |
| 이명칭 | 龍城誌, Yongseongji |
| 국적 | 한국 > 조선 |
| 시대 | 1752. |
| 작가 | - |
| 재질 | 종이 |
| 크기 | 가로 24.3cm, 세로 35.7cm |
설명
18세기 남원부의 현황과 역사에 대한 사찬읍지로 재지사족 이도(李燾)와 최여천(崔與天)이 편찬 간행함. 목판본. 총 2책('共二') 중 2책('乾','坤'). 권수제와 표제 龍城誌. 간기(刊記) 崇禎紀元後百二十五年壬申十一月日(1752년).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 24.9×19.3cm, 유계(有界), 12행 22자,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 총 221장(권1~6:111장, 권7~11:110장). 己卯年(1699년)에 쓴 방두천(房斗天)의 '용성지발(龍城誌跋)' 이라는 수서발문이 있음. 남원관부도(南原官府圖), 남원폭원도(南原幅員圖) 삽도가 기재됨. 표지 훼손됨. 내지 일부 오염됨. 모서리 접힘. 수침흔 있음.
해제
목판본 11권 2책. 권수제와 표제 모두 龍城誌. 전라도 남원부(南原府)의 읍지(邑誌)로, 용성(龍城)은 남원의 옛 이름이다. 이도(李燾)와 최여천(崔與天) 함께 편찬한 사찬 읍지이다. 권말에 “崇禎紀元後百二十五年壬申(1752)十一月日”이라는 간기가 있으며, 己卯년(1699)에 쓴 방두천(房斗天)의 <용성지발(龍城誌跋)>이라는 手書刻跋이 있다. 또한 권두에는 “崇禎紀元後七十二年己卯(1699)”에 최시옹(崔是翁, 1646-1730)이 쓴 <용성지서>라는 手書刻序가 있다. 『용성지』는 1699년에 초간본이 나왔고 1708년에 중간하였으며 1752년에 다시 증보본을 간행하였는데, 이 해제본은 1752년 증보본이다. 『용성지』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증보하여 만든 방대한 분량의 읍지로, 증보판에 와서는 여러 항목을 “신증(新增)”으로 새로 설정하여 더 많은 자료를 수록하고 있다. 남원의 재지사족들이 편찬 간행한 사찬읍지(私撰邑誌)로, 18세기 남원부의 현황과 역사에 대한 풍부한 자료가 담겨 있다. 조선시대 사찬읍지의 전통을 대표하는 것이 이 『용성지』이다. 현재 『용성지』초간본은 거의 전하는 게 없으며, 목판본인 이 해제본 또한 전본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판형이 크고 각(刻)이 선명하고 좋으며 분량이 방대한 상당히 권위가 있는 책이다. (집필자: 양승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