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조회
| 등록번호 | 구입 421 |
| 명칭 | 용비어천가 |
| 이명칭 | 龍飛御天歌, Yongbieocheonga(Songs of Dragons Flying in Heaven) |
| 국적 | 한국 > 조선 |
| 시대 | 1612. |
| 작가 | - |
| 재질 | 종이 |
| 크기 | 가로 20.3cm, 세로 31.5cm |
설명
조선 왕조의 건국을 노래한 125장의 서사시로, 훈민정음을 최초로 사용한 문학서. 필사본. 1책. 권수제 및 표제 龍飛御天歌. 권말에 한교(韓嶠, 1556-1627)의 발문 끝에 만력임자계추 서원한교배수계수경서우풍패관(萬曆壬子季秋 西原韓嶠拜手稽首敬書于豊沛館).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 20.6×16.2cm, 유계(有界), 항자수부정(行字數不定),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총 38쪽. 함경도 관찰사 한준겸(韓浚謙, 1557-1627)이 개찬한 축약본 『용비어천가』를 전사(轉寫)한 책으로, 총 125개 악장의 원작 가운데 단 26개 장만을 선별하여 수록한 저본(底本)을 그대로 필사한 것. 표지 얼룩 및 오염 심함.
해제
필사본 1책. 『용비어천가』는 조선왕조의 건국을 찬양하고 왕권의 정통성을 밝히며 후세 안녕의 기원과 송축을 담은 총 125장의 악장(樂章) 문학서이다. 훈민정음을 최초로 사용한 문헌으로 유명한데, 세종 때의 초간본 이후 광해조 간본, 효종간본, 영조조 간본 등의 중간본(목판본, 10권5책)이 나왔다. 그런가 하면 조선 후기에 선왕들의 업적을 평가하고 선양하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정통 관판본과는 상당히 다른 몇몇 『용비어천가』도 나타났다. 함경도 관찰사 한준겸(韓浚謙, 1557-1627)은 그 축약본(일명 “龍飛御天歌豊沛館改撰約本”)을 간행하였고, 정조 때 홍양호(洪良浩)는 옛 사적을 직접 답사하여 『용비어천가』의 내용을 확충하고 각 사적에 대한 어제시문과 관료들의 작품들 망라하여 『흥왕조승(興王肇乘)』(필사본)을 편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이숙번 후손가에서 이숙번을 선양하고자 개편, 간행한 목활자본 『용비어천가』(순한문본)도 나왔으며, 누군가 서사적 이야기 형태로 개찬한 독본(讀本) 형태의 필사본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이 해제본은 한준겸이 개찬한 축약본 『용비어천가』를 전사(轉寫)한 책으로, 총 125개 악장의 원작 가운데 단 26개 장만을 선별하여 수록한 저본(底本)을 그대로 필사한 책이다. 방대한 양의 주석 또한 한준겸 개찬본에서는 각 章당 한두 문장 정도로만 간추려졌다. 한준겸은 함경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축약본 형태의 언해를 덧붙인 『용비어천가』를 1612년 함흥(咸興)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현재 고려대 만송문고에 유일본이 전함). 이 개찬축약본을 이른바 ‘풍패(豊沛)간본’ 또는 ‘풍패관(豊沛館)약본’이라고 부르는데, 그 권말에 한교(韓嶠, 1556-1627)의 발문이 적혀 있고, 발문 끝에는 “萬曆壬子(1612)季秋, 西原韓嶠拜手稽首敬書于豊沛館”이라고 적었다. 당시 한준겸은 『용비어천가』 5책 1질을 한양 조정에 요청하여 역참 편으로 받아서 본 것으로 나타난다. 한준겸의 개찬 의도와 간행 과정은 한교의 발문에 자세히 나와 있다. 한준겸은 자신이 직접 언해한 한글 풀이를 덧붙이기도 하였다. 이 해제본은 그 전사본인지라 내용은 새로울 게 없으나, 가벼운 필사본은 아니어서 계선이 찍힌 양질의 종이에 필사한, 그런대로 권위 있고 무게감이 있는 책이다. 다만, 미문(美紋)의 표지는 원표지가 아니라 오래전에 개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 해제본은 비록 하나의 전사본에 불과하나, 특히 그 저본인 목판본(풍패간본)의 傳本이 매우 드물어서 『용비어천가』의 향유 및 유통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자료이다. 사실 『용비어천가』는 완본이든 축약본이든 ‘필사본’ 또한 전하는 게 매우 드물다. 참고로, 한교(韓嶠)가 본서 발문에서 간행(刊行)지로 언급한 ‘풍패(豊沛)’는 태조 이성계의 관향인 ‘전주(全州)’가 아니라, 이성계의 고향이자 조선 창업사지인 ‘함흥’을 가리키는 말이다. ‘풍패’를 근거로 ‘전주 간본’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집필자: 양승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