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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조회

등록번호

구입 426

명칭

월인천강지곡 권21

이명칭

月印千江之曲, 월인천강곡, 月印千江曲, 월인석보, 月印釋譜, Weolincheongangjigok, Weolinseokbo

국적

한국 > 조선

시대-
작가-
재질

종이

크기

가로 21.0cm, 세로 29.0cm

공공누리 1유형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월인천강지곡 권21 저작물은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소장품 이미지

설명

1447년(추정)에 세종(世宗, 재위 1418~1450)이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공덕을 악장으로 만든 것으로, 아들 수양대군이 지어 올린 <석보상절(釋譜詳節)>을 보고 지었다고 전함. 목판본. 2책. 권말제 月印千江之曲, 표제 月印千江曲. 판식은 사주단변(四周單邊), 반곽(半郭) 21.4×17.7cm, 유계(有界), 항자수부정(行字數不定),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 총 쪽수는 (2-1) 218쪽, (2-2) 158쪽. <용비어천가>와 거의 동시기에 훈민정음으로 창작한 초창기 한글문학. 권두 10장 낙장. 표지 얼룩 및 변색 있음.

해제

목판본 2책. 권수제 없음(권두 10장 낙장), 권말제 月印千江之曲第二十一 / 釋譜詳節第二十一 , 표제 月印千江之曲. 1447년(추정)에 세종(世宗)이 지은 악장체 불교 찬가로,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공덕을 악장으로 만든 것이다. 세종은 아들 수양대군이 지어 올린 『석보상절』(석가모니의 일대기)을 보고서 『월인천강지곡』이라는 악장가사를 지었다고 전한다. 『용비어천가』와 거의 동시기에 훈민정음으로 창작한 초창기 한글문학이라는 위상을 지닌다. 『월인천강지곡』은 크게 두 가지 계열의 판본이 존재한다. 하나는 세종 당대인 1449년에 금속활자로 간행한 원간본(권상 1책만 현존, 유일본, 국보 320호)이고, 다른 하나는 이후 세조 때인 1459에 목판본으로 간행한, 이른바 ‘『월인석보』 합철본’이 그것이다. 『월인천강지곡』은 금속활자 원간본 이후 단독으로 중간본이 간행된 사실이 없고, 『월인석보』 합철본 형태로 다시 간행(약간 수정)되었다. 종종 초간본 『월인석보』를 ‘원간본’이라고 지칭하기도 하나, 금속활자본으로 간행한 세종대의 원간본(『월인천강지곡』 단독 간본)과는 엄연히 구분되는 것이니 유의해야 한다. 이후 주로 16세기에 초간본 『월인석보』를 복각한 중간본들이 여러 사찰에서 각각 간행되었다. 다만 『월인석보』는 분량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완질 형태로 간행하기보다는 각 사찰, 또는 시주자의 사정에 따라 일부 권책만 선택적으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월인석보』는 완질로 전하는 게 없고, 발견된 각 판본을 다 합하여 20권 정도만 확인되고 있다. 아직도 권3, 5, 6, 16, 24는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권25 이후는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다. 각 권은 『월인천강지곡』을 먼저 싣고, 이어서 주석인 『석보상절』을 싣는 체재로 되어 있다.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서술한 이야기의 단락에 따라 『월인천강지곡』이 1~50수씩 실려 있다. ‘권21’의 경우 『월인천강지곡』 제21과 『석보상절』 제21이 합쳐져 있는데, 『월인천강지곡』 412~429장이 실려 있다. 『월인석보』 권21의 중간본은 지금까지 안동 광흥사판(1542), 순창 무량굴판(1562), 은진 쌍계사판(1569) 등의 판본이 전한다. 이 해제본은 간기가 남아 있지 않으나 다른 전본들과 대조해서 살펴보면 세간에 알려진 쌍계사판 권21이 확실하다. 사실 쌍계사판은 엄밀히 말해 충청도 한산(寒山) 지방 죽산리(竹山里) 백개만(白介万) 가(家)에서 간행한 것이다. 간기와 시주질이 남아 있는 쌍계사판 권21 다른 전본들을 살펴보면 “隆慶三年己巳(1569)二月日 忠淸道寒山地竹山里 白介万(萬)家梫刻 以傳恩津地佛明山雙溪寺留置”라는 간기가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이로 보아 백개만 집안에서 처음 간행하고서 그 새긴 판목을 논산의 불명산 쌍계사로 옮겨서 보관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백개만이 시주하여 판각하고는 장판각이 갖춰져 있는 사찰로 이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쌍계사판 권21은 광흥사판을 다시 번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 규장각, 장서각(한국학중앙연구원), 동국대 도서관, 한양대 도서관 등에 남아 있다. 이 권21은 기본적으로 상하 2책, 혹은 건곤 2책으로 전하고 있는데, 이 해제본 또한 2책으로 분책 되어 있다. 사실 광흥사판 권21도 상하 혹은 건곤 2책으로 되어 있다. 특별히 이 현전 쌍계사판 권21은 권두에 총 10장이 낙장인데, 이 해제본 또한 동일하다. 분책 방식(부분)에 있어서도 예컨대 장서각본과 완전히 같다. 이는 판목이 일부 소실된 상태에서 인출한 후쇄본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 때문에 엄밀히 말해 ‘낙장’이 아니라, 이미 일부가 일실된 판목 그대로(보각을 하지 못하고) 찍은 결과이다. 참고로, 쌍계사판 『월인석보』 권21의 경우 그 판목 일부가 현재 충남 공주의 갑사에 전하고 있다, 오래전에 갑사에서 입수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원래는 백개만이 시주하여 쌍계사에 보관하던 바로 그 판목으로, 46매 중 31매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해제본은 『월인석보』 권21의 이본 현황과 유통 양상을 살피는 데 있어 도움이 되는 자료이며, 후쇄본 중에서도 인쇄 상태가 비교적 좋은 편에 속한다. (집필자: 양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