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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조회

등록번호

구입 551

명칭

1924년 최기수가 강대덕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이명칭

Letter and Envelope Sent by Choi Gisu to Kang Daedeok in 1924

국적

한국 > 일제강점

시대

1924.9.2.

작가

최기수(崔基秀) 발신; 강대덕(姜大悳) 수신

재질

종이

크기

가로 8.3cm, 세로 21.7cm, 가로 33.2cm, 세로 24.1cm

공공누리 1유형

국립세계문자박물관 1924년 최기수가 강대덕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저작물은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소장품 이미지

설명

1924년 최기수가 강대덕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2-1) 봉투의 앞면에는 ‘경 연건동 69번지(京 蓮建洞 六九番地)’라는 주소와 ‘강대덕 전(姜大悳 殿)’이라고 받는 사람 등을 표기해 놓았음. 뒷면에는 ‘경기도 이천군 대월면 송라리(京畿道 利川郡 大月面 松蘿里)’라는 주소와 ‘최기수(崔基秀)’라고 보낸 사람, ‘갑자 9월 3일(甲子 九月 三日)’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음. (2-2) 편지는 소작인의 소작료 상납 곡식량이 부족한 난처한 상황과 농토의 토질과 수확량의 상관관계, 소작료 인상의 어려움 등을 보고하는 내용임. 편지 끝에 ‘갑자 음9월 초2일 제 최기수(甲子 陰九月 初二日 弟 崔基秀)’라는 기록이 있어 보내는 이와 적은 날짜를 알 수 있음. (2-1) 우표와 소인(消印) 없음, 상태 양호함. (2-2) 상태 양호함.

해제

[내용] 1924년 최기수(崔基秀)가 강대덕(姜大悳)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2-1) 봉투, (2-2) 편지. 소작인의 소작료 상납 곡식량이 모자르는 난처한 상황과 농토의 토질과 수확량의 상관관계, 소작료 인상의 어려움 등을 보고하는 내용. (2-1) 봉투의 앞면에는 ‘京 蓮建洞 六九番地’라는 주소와 ‘姜大悳 殿’이라고 받는 사람 등을 표기해 놓았음. 봉투의 뒷면에는 ‘京畿道 利川郡 大月面 松蘿里’라는 주소와 ‘崔基秀’라고 보낸 사람, ‘甲子 九月 三日’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음. (2-2) 편지에는 안부 인사에 이어서 올벼[早稻] 추수한 것을 거둬 상납하는데 매 섬에서 10여 근이 모자라 수단껏 소작인에게 받는 즉시 상납을 해도 그러니 어떻게 해야 축이 안 날 것인지 문의하고 있음. 매 섬에서 10여 근 정도가 축이 난다고 소작인들에게 말하면 소작인들 말이 가남면 대신리는 사토(沙土:모래흙)라 열매가 잘 여문 것이고 이곳 송라리는 질토[진땅]라 그런 것이라 하며 또, 송라리 문압 질토와 소목개 사토 중에서 곡식 수확량은 관리자가 없어도 사토가 많이 난다고 말함. 저(마름 崔基秀)는 열심히 상납한다고 했는데 매 섬에서 10여 근 정도가 축이 나니 잘 모르겠다고 보고함. 김성무(金聖武)한테 도조(賭租)를 올린 것은 잘되지 않았고 논도 내놓고 짓지 않고 있으니 어찌해야 할지를 물음. 금년 봄에 농사지은 논들은 추수 상납을 더 걷을 수 없게 되었으니 답장 주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적고 있음. 편지 끝에 ‘甲子 陰九月 初二日 弟 崔基秀’라는 기록이 있어 보내는 이와 적은 날짜를 알 수 있음. [상태] 봉투 및 편지 상태 양호함. [기타] 학술적 가치는 높지 않으나 소작인의 소작료 상납 상황 및 소작료 인상에 대한 문제 등의 내용을 통해 1920년대 소작인과 지주의 농촌 사회구조 및 경제 상황을 살피는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음. (집필자: 박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