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조회
| 등록번호 | 구입 569 |
| 명칭 | 1926년 최기수가 강대덕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
| 이명칭 | Letter and Envelope Sent by Choi Gisu to Kang Daedeok in 1926 |
| 국적 | 한국 > 일제강점 |
| 시대 | 1926.2.12. |
| 작가 | 최기수(崔基秀) 발신; 강대덕(姜大悳) 수신 |
| 재질 | 종이 |
| 크기 | 가로 8.2cm, 세로 21.3cm, 가로 32.9cm, 세로 24.2cm, 가로 13.2cm, 세로 24.1cm |
설명
1926년 최기수가 강대덕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3-1) 봉투의 앞면에는 ‘대일본제국우편 삼전(大日本帝國郵便 參錢)’이라고 새겨진 우표에 소인(消印)이 찍혀 있음, ‘경 연건동 69번지(京 蓮建洞 六九番地)’라는 주소와 ‘강대덕 전(姜大悳 殿)’이라고 받는 사람이 적혀 있음. 뒷면에는 ‘이천군 대월면 송라리(利川郡 大月面 松蘿里)’라는 주소와 ‘최기수(崔基秀)’라고 보낸 사람, ‘병인 2월 13일래(丙寅 二月 十三日來)’라고 날짜가 적혀 있음. (3-2, 3) 편지는 안부 인사와 함께 서목개(西木介) 복사답(覆沙畓) 4마지기 개간 계획과 비용 분담, 이천군 농회 운영 및 회비 규칙을 보고하는 내용임. 편지 끝에 ‘병인 음2월 12일 죄제 최기수 배상(丙寅 陰二月 十二日 罪弟 崔基秀 拜上)’이라 적고 있어 보내는 이와 작성 날짜를 알 수 있음. (3-1) 상태 양호함. (3-2, 3) 가운데 접힌 부분 오염됨.
해제
[내용] 1926년 최기수(崔基秀)가 강대덕(姜大悳)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3-1) 봉투, (3-2) 와 (3-3) 편지. (3-1) 봉투의 앞면에는 ‘大日本帝國郵便 參錢’이라고 새겨진 우표에 소인(消印)이 찍혀 있으며 ‘京 蓮建洞 六九番地’라는 주소와 ‘姜大悳 殿’이라고 받는 사람이 적혀 있음. 봉투의 뒷면에는 ‘利川郡 大月面 松蘿里’라는 주소와 ‘崔基秀’라고 보낸 사람, ‘丙寅 二月十三日來’라고 날짜가 적혀 있음. (3-2)와 (3-3) 편지에는 달포 궁금하던 차에 편지를 받으니 형님(지주 姜大悳)의 낯을 마주하는 듯 기쁘고 음력 2월의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는데 건강하시고 집안도 평안하시다 하니 반가우며 저(마름 崔基秀)는 모진 목숨 부지하고 가내도 별고 없으니 다행이라는 안부인사를 전하고 있음. 서목개(西木介) 복사답(覆沙畓: 밀려든 물에 모래나 흙으로 덮인 논) 4마지기 개간 일은 농사일에 경험이 많은 사람과 상의하여도 겉가량(假量: 겉으로만 보고 대강 하는 속셈이나 짐작)이 45원 정도 비용이 들겠다 하고 구중선(具仲宣)이 소작답 개간에 대해서 소작인 자기가 부담하고 20여 원은 형님(지주, 姜大悳)께서 비용을 부담해야 할듯함. 모두 다 소작인이 부담하는 것은 동네 의논도 있고 해서 아니 되겠음. 또한 개간하는 날짜는 이달 30일쯤으로 할 예정임. 이천군(利川郡) 농회(農會)를 하는 목적은 광농(廣農: 대규모의 농사를 짓는 농민)이나 소농(小農: 가족끼리 경작하는 소규모의 농사를 짓는 농민)이나 일치협력해서 농사를 힘써 하기에 농회라 칭한 것임. 이천군(利川郡) 전체가 농회에 회비를 납부하고 타지역 지주라도 이천군에 토지가 있으면 다 농회에 들러서 회비로 토지세 10원에 대하여 50전씩 내고 회원은 1인당 20전씩 내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음. 그리고 농사장려회비(農事獎勵會費)를 없애고 농회비로 대체하여 농사에 대한 세금을 체납하면 법률에 따라 토지세와 같이 집행한다 함. 이태일(李泰日)이 부모 내외분은 다 안녕하고 태일은 금일은 아직 빼지 않았으나 장차 뺄 예정임. 요새 나무는 잘하는 것 같다고 적고 있음. 편지 끝에 ‘丙寅 陰二月 十二日 罪弟 崔基秀 拜上’이라 적고 있어 보내는 이와 작성 날짜를 알 수 있음. [상태] 봉투 및 편지 상태 양호함. [기타] 학술적 가치는 높지 않으나 1920년대 농촌 사회의 구조, 지주와 마름과의 관계, 이천농회의 실태를 살피는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음. (집필자: 박재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