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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조회

등록번호

구입 571

명칭

1926년 최기수가 강대덕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이명칭

Letter and Envelope Sent by Choi Gisu to Kang Daedeok in 1926

국적

한국 > 일제강점

시대

1926.3.5.

작가

최기수(崔基秀) 발신; 강대덕(姜大悳) 수신

재질

종이

크기

가로 7.8cm, 세로 20.3cm, 가로 31.6cm, 세로 24.1cm, 가로 12.9cm, 세로 24.0cm

공공누리 1유형

국립세계문자박물관 1926년 최기수가 강대덕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저작물은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소장품 이미지

설명

1926년 최기수가 강대덕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3-1) 봉투의 앞면에는 ‘경 연건동 69번지(京 蓮建洞 六九番地)’라는 주소와 ‘강대덕 전(姜大悳 殿)’이라고 받는 사람이 표기됨. 뒷면에는 ‘이천군 대월면 송라리(利川郡 大月面 松蘿里)’라는 주소와 ‘최기수(崔基秀)’라고 보낸 사람, ‘병인 2월 6일래(丙寅 二月 六日來)’라고 날짜가 적혀 있음. 이('二')는 삼('三')의 오자로 추정됨. (3-2, 3) 편지는 안부 인사와 서목개(西木介) 복사답 개간 작업 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내용임. 편지 끝에 ‘음3월 5일 죄제 최기수 배상(陰三月 五日 罪弟 崔基秀 拜上)’이라 적혀 있어 보내는 이와 작성 날짜를 알 수 있음. (3-1) 우표와 소인(消印) 부분 박락됨. (3-2) 접힌 부분 일부 오염됨. (3-3) 뒷면에 '三月 初四日, 人夫 五十名, 人夫 三十三名'이라고 쓰여 있음.

해제

[내용] 1926년 최기수(崔基秀)가 강대덕(姜大悳)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3-1) 봉투, (3-2)와 (3-3) 편지. (3-1) 봉투의 앞면에는 ‘京 蓮建洞 六九番地’라는 주소와 ‘姜大悳 殿’이라고 받는 사람이 표기되어 있고 봉투의 뒷면에는 ‘利川郡 大月面 松蘿里’라는 주소와 ‘崔基秀’라고 보낸 사람, ‘丙寅 二[三의 오자]月 六日來’라고 날짜가 적혀 있음. (3-2)와 (3-3) 지난번 보내드린 편지는 그사이 도착했을 듯하고 요사이 날씨가 고르지 못한데 건강하시고 집안이 평안하신지 궁금하며 저(마름 崔基秀)는 아직 무탈하니 다행이라는 안부 인사를 전하고 있음. 서목개(西木介) 물에 밀려서 모래가 덮여 쌓인 땅을 논으로 일구는 것을 지난달 28일로 시작하여, 3월 4일까지 나래(논밭을 반반하게 고르는 농기구)는 13개, 인부가 24명으로 1인당 60전, 나래 1개당 1엔(円) 20전인데 송금 40엔으로는 태반이 부족하기에 통지하오니 아무리 바쁘셔도 왕림하시길 바라며 만약 오지 못하시면 사오십 환을 바로 보내주시기 바란다고 적고 있음. 논갈이에 대해 말하자면 개둑(개울의 물이 넘쳐나지 않도록 쌓아올린 둑)은 고사하고 논바닥 갈이도 반도 못하였고 구중선(具仲先) 자제 소작답 갈이는 나래 7개 인부 19명으로 하였으나 반도 못했다고 적고 있음. 편지 끝에 ‘陰三月 五日 罪弟(죄제:죄많은 동생, 자신을 낮추는 말) 崔基秀 拜上’이라 적고 있어 보내는 이와 작성 날짜를 알 수 있음. [상태] 봉투 및 편지 상태 양호함. [기타] 학술적 가치는 높지 않으나 1920년대 농촌 사회의 구조, 지주와 마름과의 관계, 수해로 인한 복구 현황 등을 살피는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음. (집필자: 박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