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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조회

등록번호

구입 574

명칭

1926년 최기수가 강대덕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이명칭

Letter and Envelope Sent by Choi Gisu to Kang Daedeok in 1926

국적

한국 > 일제강점

시대

1926.4.7.

작가

최기수(崔基秀) 발신; 강대덕(姜大悳) 수신

재질

종이

크기

가로 8.5cm, 세로 21.1cm, 가로 32.9cm, 세로 24.2cm

공공누리 1유형

국립세계문자박물관 1926년 최기수가 강대덕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저작물은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소장품 이미지

설명

1926년 최기수가 강대덕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2-1) 봉투의 앞면에는 ‘대일본제국우편 삼전(大日本帝國郵便 參錢)’이라고 새겨진 우표에 소인이 찍혀 있으며 ‘경 연건동 69번지(京 蓮建洞 六九番地)’라는 주소와 ‘강대덕 전(姜大悳 殿)’이라고 받는 사람이 표기됨. 뒷면에는 ‘이천군 대월면 송라리(利川郡 大月面 松蘿里)’라는 주소와 ‘최기수(崔基秀)’라고 보낸 사람, ‘병인 4월 8일래(丙寅 四月 八日來)’라는 날짜가 적혀 있음. (2-2) 편지는 안부 인사와 함께 이석여(李石汝) 소작 및 대명곡 도랑 작업, 추수 손해와 수확 계획을 보고한 내용임. 편지 끝에 ‘병인 음4월 초7일 죄제 최기수(丙寅 陰四月 初七日 罪弟 崔基秀)’라고 적고 있어 보내는 이와 작성 날짜를 알 수 있음. (2-1, 2) 상태 양호함.

해제

[내용] 1926년 최기수(崔基秀)가 강대덕(姜大悳)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2-1) 봉투, (2-2) 편지. (2-1) 봉투의 앞면에는 ‘大日本帝國郵便 參錢’이라고 새겨진 우표에 소인이 찍혀 있으며 ‘京 蓮建洞 六九番地’라는 주소와 ‘姜大悳 殿’이라고 받는 사람이 표기되어 있고 봉투의 뒷면에는 ‘利川郡 大月面 松蘿里’라는 주소와 ‘崔基秀’라고 보낸 사람, ‘丙寅 四月八日來’라는 날짜가 적혀 있음. (2-2) 편지에는 지난번 편지는 받았고 요즘 몸 건강하시고 집안 평안하시며 어린아이 병은 태독정(胎毒疔: 젖먹이의 몸이나 얼굴에 진물이 흐르며 허는 증상)이라 걱정이 되며 저(마름 崔基秀)는 모진 목숨 부지하고 가내도 별고없다는 안부인사를 전하고 있음. 이석여(李石汝) 소작인 정한 일은 누차 말은 하였는데 내년에는 올벼[早稻]를 부치겠다 하고 대명곡(大明谷) 도랑 내는 데 경비가 인부 4명과 나래(논밭을 반반하게 고르는 농기구의 한 가지) 1채 들었다고 보고함. 인부는 1인당 밥값으로 20전(錢), 나래 1채가 1엔(円) 20전으로 도합 2엔이 들었다고 말함. 추수 도조(賭租) 7섬이 상해서 손해가 났다 하니 죄송하다고 함. 그러나 이왕에 한 일을 어쩔 수 없고 금년은 형님이 시키신 대로 추수 때에 상급 벼로 거두고 마질과 마당질 잘하고 전대(田垈) 도조(賭租:소작료)도 극상품으로 거두어들이겠다고 말함. 이강일(李康日)은 농사에 익숙지 않으나 근실하게 잘하고 이원로(李元魯)씨 내외분도 다 별고 없다고 적고 있음. 편지 끝에 ‘丙寅 陰四月 初七日 罪弟 崔基秀’라고 적고 있어 보내는 이와 작성 날짜를 알 수 있음. [상태] 봉투 및 편지 상태 양호함. [기타] 학술적 가치는 높지 않으나 1920년대 지주와 마름, 소작인의 관계, 경작 및 소작료 실태를 살피는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음. (집필자: 박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