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조회
| 등록번호 | 구입 598 |
| 명칭 | 1926년 이종덕이 강대덕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
| 이명칭 | Letter and Envelope sent by Lee Jongdeok to Kang Daedeok in 1926 |
| 국적 | 한국 > 일제강점 |
| 시대 | 1926.2.12. |
| 작가 | 이종덕(李種德) 발신; 강대덕(姜大悳) 수신 |
| 재질 | 종이 |
| 크기 | 가로 8.3cm, 세로 21.2cm, 가로 33.3cm, 세로 24.0cm |
설명
1926년 이종덕이 강대덕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2-1) 봉투의 앞면에는 ‘대일본제국우편 삼전(大日本帝國郵便 參錢)’이라고 새겨진 우표에 소인이 찍혀 있으며 ‘경 연건동 69번지(京 蓮建洞 六九番地)’라는 주소와 ‘강대덕 전(姜大悳 殿)’이라고 받는 사람을 표기해 놓았음. 봉투의 뒷면에는 ‘이천군 대월면 송라리(利川郡 大月面 松蘿里)’라는 주소와 ‘이종덕(李種德)’이라고 보낸 사람, ‘병인 2월 13일 래(丙寅 二月 十三日 來)’라고 보내는 날짜 등이 적혀 있음. (2-2) 편지에는 소작답과 복사답(覆沙畓) 개간 비용과 일정 등을 보고하고, 여주군에 농회령(農會令)이 시행되어 농회의 성립과 규정을 알리고 있음. 편지 끝에 ‘병인 음력 2월 12일 제 이종덕(丙寅 陰二月 十二日 弟 李種德)’이라 적고 있어 보내는 이와 작성 날짜를 알 수 있음. (2-1) 상태 양호. (2-2) 일부 얼룩 있음.
해제
[내용] 1926년 이종덕(李種德)이 강대덕(姜大悳)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2-1) 봉투, (2-2) 편지. (2-1) 봉투의 앞면에는 ‘大日本帝國郵便 參錢’이라고 새겨진 우표에 소인이 찍혀 있으며 ‘京 蓮建洞 六九番地’라는 주소와 ‘姜大悳 殿’이라고 받는 사람을 표기해 놓았음. 봉투의 뒷면에는 ‘利川郡 大月面 松蘿里’라는 주소와 ‘李種德’이라고 보낸 사람, ‘丙寅 二月十三日來’라고 보내는 날짜 등이 적혀 있음. (2-2) 편지에는 지주 형님 댁(姜大悳宅) 서목개(西木介) 복사답(覆沙畓) 개간 일은 동리(洞里) 노농자와 상의하여 본즉 4마지기에 대하여 개뚝 말고 논바닥만 개간하면 어림짐작으로 40여원 가량 들고, 구중선(具仲宣) 소작답 3마지기는 2마지기 정도 복사(覆沙)가 되었는데 소작인이 자기부담으로 개간은 못 하겠으며, 3마지기에서 2마지기 정도 복사를 개간하려면 20여원 정도가 들기에 다 합산하면 70원, 개간 날짜는 이달 30일까지 할 터이니 그리 아시라고 함. 농회령(農會令, 1926년 각종 농업단체의 범람을 방지, 통합, 정리하고자 공포된 법령.) 규정이 여주군(驪州郡)에도 성립되었다 함. 농회는 농사짓는 사람이면 소농, 광농(廣農, 대규모 경작자), 각 지주들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농사에 힘쓰고 1인당 농회비 20원, 토지세 10엔(円)에 50전을 내는 대신 농사장려회비는 없애고 각 농사에 대해 체납 되면 토지세와 같이 차압할 차로 농회 성립을 한다고 적고 있음. 편지 끝에 ‘丙寅 陰二月十二日 弟 李種德’이라 적고 있어 보내는 이와 작성 날짜를 알 수 있음. [상태] 봉투 및 편지 상태 양호함. [기타] 학술적 가치는 높지 않으나 1920년대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 농회령 제정 등을 통해 일제강점기 농업정책을 살피는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음. (집필자: 박재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