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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조회

등록번호

구입 603

명칭

1922년 김영실이 강대덕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이명칭

Letter and Envelope sent by Kim Yeongsil to Kang Daedeok in 1922

국적

한국 > 일제강점

시대

1922.10.7.

작가

김영실(金永實) 발신; 강대덕(姜大悳) 수신

재질

종이

크기

가로 7.7cm, 세로 19.0cm, 가로 29.2cm, 세로 21.3cm

공공누리 1유형

국립세계문자박물관 1922년 김영실이 강대덕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저작물은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소장품 이미지

설명

1922년 김영실이 강대덕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2-1) 봉투의 앞면에는 ‘대일본제국우편 오전(大日本帝國郵便 五錢)’이라고 새겨진 우표 2장에 소인이 찍혀 있으며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장리 11번지(忠淸南道 禮山郡 古德面 上長里 拾一番地)’라는 주소와 ‘강대덕 씨전(姜大悳 氏殿)’이라는 받는 사람을 표기해 놓았음. 봉투의 뒷면에는 ‘여주군 가남면 대신리 18번지(驪州郡 加南面 大新里 拾八番地)’라는 주소와 ‘김영실(金永實)’이라는 보낸 사람, ‘임술 음 10월 7일부(壬戌 陰十月七日付)’라는 보낸 날짜가 적혀 있음. (2-2) 편지에는 늦벼 추수와 출하 상황 및 곡식 보관 현황을 보고하고, 방매와 토지세 납부 문제, 경비 지출 등을 알리며 지시를 요청하고 있음. 편지 끝에 ‘임술 10월 초7일 소인 김영실 상서백(임슐 十月 初七日 小人 金永實 上書白)’이라 적고 있어 보내는 이와 편지를 적은 날짜를 알 수 있음. (2-1) 상단 박락. (2-2) 계선이 있는 양지(洋紙)에 필서됨, 일부 얼룩 있음.

해제

[내용] 1922년 김영실(金永實)이 강대덕(姜大悳)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2-1) 봉투, (2-2) 편지. (2-1) 봉투의 앞면에는 '大日本帝國郵便 五錢'이라고 새겨진 우표 2장에 소인이 찍혀 있으며 ‘忠淸南道 禮山郡 古德面 上長里 拾一番地’라는 주소, ‘姜大悳 氏殿’이라는 받는 사람을 표기해 놓았음. 봉투의 뒷면에는 ‘驪州郡 加南面 大新里 拾八番地’이라는 주소와 ‘金永實’이라는 보낸 사람, ‘壬戌 陰十月七日付’라는 보낸 날짜가 적혀 있음. (2-2) 편지에는 지난번 내려주신 편지는 살펴보았기에 다시 편지 올리며 몸 건강하신지 댁내 여전히 평안하신지 궁금하며 이곳 소작인은 집안이 모두 무탈하다는 안부 인사를 전하고 있음. 이어서 늦벼[晩稻] 추수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곡식이 모두 24석 6말 1되며 이 가운데 김광원에게 13말을 보내고 나머지 23석 13말 1되가 쌓여 있다고 말함. 산자답(山字畓) 22섬은 그간 여주읍(驪州邑)으로 포구에 내어 배에 실어 둑도(纛島, 뚝섬)에 도착하였고, 기별하신 대로 받들어 시행치 못하여 속히 서울로 오셔서 방매(放賣)하시는 것이 좋을 듯하며 칠자답(七字畓)도 다 나가고 1석만 변대수한테 있다고 함. 토지세 납부고지서가 일간 나온다 하고 이곳 시세는 한 섬에 9엔(円) 20전(錢)이며 여주읍(驪州邑)에서는 9엔 5십전 한다 하니 아직 대중할 수 없고 광원이한테 있는 인삼(人蔘)과 세 곳 토지세는 또 기별하시기 바라며 제게 쌓아놓은 몫은 단단히 보관했으니 일후 기별하시기 바란다고 말함. 농사장려회비(農事獎勵會費)로 1엔 30전을 물었으니 양해하시라고 함. 편지 끝에 ‘임슐 十月 初七日 小人 金永實 上書白’이라 적고 있어 보내는 이와 편지를 적은 날짜를 알 수 있음. [상태] 봉투 및 편지 상태 양호함. [기타] 학술적 가치는 높지 않으나 1920년대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 소작료, 출포된 농작물의 유통 경로 등을 살피는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음. (집필자: 박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