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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번호 | 구입 735 |
| 명칭 | 1739년 이윤욱이 위정수에게 전답을 방매한 명문 |
| 이명칭 | 명문, 明文, Land Dealing Document (Myeongmun) Issued by Lee Yunuk to Wi Jeongsu, 1739 |
| 국적 | 한국 > 조선 |
| 시대 | [1739.5.2.] |
| 작가 | - |
| 재질 | 종이 |
| 크기 | 가로 29.0cm, 세로 28.3cm |
설명
이윤욱이 위정수에게 밭을 방매(放賣)한 계약문서. 1739.5.2.(己未五月初二日). 낱장(전 1장). 표기문자 한자 및 이두. 인장 없음. 이윤욱(李允旭)이 매득(買得)하여 경작하던 순천부(順天府) 율촌면(栗村面) 조촌(鳥村) 척등평(尺嶝坪) 소재의 밭을 위정수(魏禎琇)에게 방매하는 내용. 본문에는 ‘건륭 3년(1738, 무오년)’과 ‘기미년’이 병기되어 있으나 상호 불일치함. 연대 비정 시 간지 기록을 보다 정확한 것으로 보아 이를 기준으로 작성 시기를 기미년인 1739년으로 추정함. 전체적으로 변색 및 오염 있으나 상태 양호함.
해제
【내용】 영조 15년(1739) 5월 초2일 이윤욱(李允旭)이 자기가 매득(買得)하여 수년간 갈아먹던 밭을 위정수(魏禎琇)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계약문서이다. 본문에는 작성 시기를 “乾隆參年己未五月初二日”로 기록하고 있으나 건륭 3년(1738)은 무오년이고 기미년은 이듬해이다. 이런 경우 통상 간지 기록이 좀 더 정확하다고 판단하므로 1739년 문서로 추정하였다. 전답은 율촌면(栗村面) 조촌(鳥村) 척등평(尺嶝坪)에 소재하고 있었다. 토지대장에는 강(崗) 자호(字號)에 등재되었다. 순천부(順天府) 소속 땅이다. 밭 6두락(斗落)을 10냥 받고 팔았다. 방매한 사유는 형편상 부득이하였다고만 기록하고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기타】 전답을 매입한 위정수(1743~1811)는 순천(오늘날 여수시 해당) 율촌면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世居)한 장흥위씨(長興魏氏)가 인물이다. 율촌면 봉두마을이 여수의 대표적 장흥위씨 집성촌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휘하에서 전공을 세운 위대경(魏大經, 1555~1623)의 부인 최씨가 봉두마을에 정착한 후 그 아들 위효징(魏孝徵)이 광산김씨 김명운(金命韻)의 딸에게 장가들면서 위씨 촌락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