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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구입 736

명칭

1747년 위흥만이 숙행에게 전답을 방매한 명문

이명칭

명문, 明文, Land Dealing Document (Myeongmun) Issued by Wi Heungman to Sukhaeng, 1747

국적

한국 > 조선

시대

[1747.2.15.]

작가-
재질

종이

크기

가로 52.8cm, 세로 42.3cm

공공누리 1유형

국립세계문자박물관 1747년 위흥만이 숙행에게 전답을 방매한 명문 저작물은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소장품 이미지

설명

위흥만이 승 숙행에게 논을 방매(放賣)한 계약문서. 1747.2.15.(丁卯二月十五日). 낱장(전 1장). 표기문자 한자 및 이두. 인장 없음. 위흥만(魏興萬)이 상속받은 순천(順天) 율촌면(栗村面) 조지려(鳥指閭) 소검복동평(小檢卜洞坪) 소재의 논을 승려 숙행(俶幸)에게 방매하는 내용. 본 거래 이전에 해당 전답의 소유권 변동, 즉 거래나 상속 등을 기록한 본문기(本文記)는 상속재산 전체를 담은 도문기(都文記)이므로 내어줄 수 없어, 이 논의 방매 사실을 도문기 뒷면에 기록함. 본문에는 ‘건륭 13년(1748, 무진년)’과 ‘정묘년’이 병기되어 있으나 상호 불일치함. 연대 비정 시 간지 기록을 보다 정확한 것으로 보아 이를 기준으로 작성 시기를 정묘년인 1747년으로 추정함. 우측 하단 결손 있음. 가장자리 마모 및 결실 확인되며 전체적으로 오염 및 변색 있음.

해제

【내용】 영조 23년(1747) 2월 15일 위흥만(魏興萬)이 상속받은 논을 승려 숙행(俶幸)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계약문서이다. 본문에는 작성 시기를 “乾隆拾參年丁卯二月十五日”로 기록하고 있으나 건륭 13년(1748)은 무진년이고 정묘년은 한해 전이다. 이런 경우 통상 간지 기록이 좀 더 정확하다고 판단하므로 1747년의 문서로 추정하였다. 전답은 순천(順天) 율촌면(栗村面) 조지려(鳥指閭) 소검복동평(小檢卜洞坪)에 소재한 땅이다. 조상으로부터 전래(傳來) 받은 상속 재산이고, 매도 사유는 긴히 쓸 데가 있어서 부득이하다고 하였다. 토지대장에 출(出) 자호(字號)에 등재되었으며, 5부(負) 4속(束)의 면적으로 올라 있는 전답이다. 1두락지(斗落只)의 논을 8냥 받고 팔았다. 거래 토지의 이전 소유권 변동, 즉 매매나 상속에 관한 문서를 본문기(本文記)라고 지칭하는데, 이 거래에서는 도문기(都文記)라는 상속문서였다. 다른 상속재산도 함께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매수인에게 넘겨줄 수 없으므로 도문기 뒷면에 이 방매 사실을 기록하였고 문서 말미에 밝혀 두었다. 이 거래에는 다른 증인은 참석하지 않았고 논주인인 위흥만이 직접 본 계약문서를 작성하였다. 【기타】 본 문서는 여수 장흥위씨(長興魏氏)가 토지매매명문 일괄 가운데 한 점이다. 따라서 승려 숙행에게 팔린 이 전답이 후에 장흥위씨가로 다시 팔린 탓에 위씨가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순천부(오늘날 여수시 해당) 율촌면 봉두마을은 여수의 대표적 장흥위씨 집성촌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휘하에서 전공을 세운 위대경(魏大經, 1555~1623)의 부인 최씨가 봉두마을에 정착한 후 그 아들 위효징(魏孝徵)이 광산김씨 김명운(金命韻)의 딸에게 장가들면서 위씨 촌락의 기틀이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