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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번호 | 구입 742 |
| 명칭 | 1780년 위사충이 위사무에게 전답을 방매한 명문 |
| 이명칭 | 명문, 明文, Land Dealing Document (Myeongmun) Issued by Wi Sachung to Wi Samu, 1780 |
| 국적 | 한국 > 조선 |
| 시대 | 1780.12. |
| 작가 | - |
| 재질 | 종이 |
| 크기 | 가로 40.8cm, 세로 38.0cm |
설명
위사충이 위사무에게 전답을 방매(放賣)한 계약문서. 1780.12.○4.(乾隆四十五年庚子十二月○四日). 낱장(전 1장). 표기문자 한자 및 이두. 인장 없음. 위사충(魏師忠)이 상속받은 순천부(順天府) 율촌면(栗村面) 손수동원(孫水洞員) 소재의 논을 유학 위사무(魏師武)에게 방매하는 내용. 본 거래 이전에 해당 전답의 소유권 변동, 즉 거래나 상속 등을 기록한 본문기(本文記)도 함께 건네줌. 우측 중·하단부 결락 있으며, 전체적으로 오염 및 변색 있음.
해제
【내용】 정조 4년(1780) 12월 24일 유학(幼學) 위사충(魏師忠)이 상속받은 논을 유학 위사무(魏師武)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계약문서이다. 자기 몫으로 상속받아서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금년에 이르러 집에서 쓴 사채를 갚을 방도가 없어서 판 것이다. 해당 논은 순천부(順天府) 율촌면(栗村面) 손수동원(孫水洞員)에 소재한 땅이다. 토지대장에 인(寅) 자호(字號)에 등재된 6부(負) 7속(束)의 논 3필지, 3두락지(斗落只)를 팔고 37냥 받았다. 본 거래 이전에 해당 전답의 소유권 변동, 즉 거래나 상속 등을 기록한 본문기(本文記)도 함께 건네주었다. 이는 조선시대 토지거래 관행이다. 논주인인 위사충이 직접 본 명문(明文)을 작성하였고, 증인으로는 같은 위씨인 위계홍(魏啓弘)이 참여하였다. 【기타】 본 명문은 여수시 장흥위씨(長興魏氏)가 전답매매명문 일괄문서 가운데 한 점이다. 판 사람이나 산 사람 및 증인도 모두 위씨로 장흥위씨가 인물로 추정된다. 7년 후인 1787년에 위사무가 위정수(魏禎琇)에게 위 전답을 방매하는 문서도 함께 전하므로, 이 문서는 본문기로 위정수가에 전해진 것이다. 순천부(오늘날 여수시) 율촌면의 장흥위씨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휘하에서 전공을 세운 위대경(魏大經, 1555~1623)의 부인 최씨가 봉두마을에 정착한 후, 그 아들 위효징(魏孝徵)이 이전에 입향한 광산김씨 김명운(金命韻)의 딸에게 장가들면서 집성촌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위정수는 위효징의 직계 주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