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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구입 745

명칭

1789년 위명래가 위정수에게 전답을 방매한 명문

이명칭

명문, 明文, Land Dealing Document (Myeongmun) Issued by Wi Myeongrae to Wi Jeongsu, 1789

국적

한국 > 조선

시대

1789.02.19.

작가-
재질

종이

크기

가로 46.3cm, 세로 38.3cm

공공누리 1유형

국립세계문자박물관 1789년 위명래가 위정수에게 전답을 방매한 명문 저작물은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소장품 이미지

설명

정조 13년(1789) 위명래(魏命來)가 논 3두락(斗落)을 위정수(魏禎琇)에게 27냥(兩)에 방매(放賣)한 계약문서. 1789.02.19.(乾隆伍拾肆年己酉二月十九日). 낱장(전1장). 표기문자 한자 및 이두. 인장 없음. 순천부(順天府) 율촌면(栗村面) 조지려(鳥旨閭) 전평(前坪)에 소재하며, 토지대장에는 출(出) 자호(字號), 면적 14부 4속(負束)으로 등재됨. 초상(初喪)으로 인한 부채 및 환곡(還穀) 상환을 위해 제전(祭田)을 동성 친척에게 매도한 사례임. 필집(筆執)은 삼종제(三從弟) 위치흥(魏致興)이 담당함. 매도인은 상중(喪中)으로 서명하지 않고 ‘상불착(喪不着)’이라 기록함. 접지에 따른 주름과 오염이 확인됨. 가장자리 일부 마모와 결손 있음. 전반적으로 상태 양호함.

해제

【내용】 정조 13년(1789) 2월 19일 위명래(魏命來)가 논 3두락(斗落)을 위정수(魏禎琇)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계약문서이다. 순천부(順天府) 율촌면(栗村面) 조지려(鳥旨閭) 전평(前坪)에 소재한 땅이다. 토지대장에는 출(出) 자호(字號)에 등재되었고, 면적은 14부(負) 4속(束)이다. 논주인 위명래는 초상(初喪)을 치르느라 진 빚과 이전에 빌린 환곡을 갚을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부모님 제사몫 전답을 재당질 위정수에게 판 것이다. 문서 작성자인 필집(筆執)은 동성(同姓) 삼종제(三從弟) 위치흥(魏致興)이 담당하였다. 매도인, 매입인, 증인 및 필집이 모두 위씨가 인물들이다. 특히나 외부로 방매하기를 꺼리는 제전(祭田)의 거래건이므로 동성 친척에게 넘기고 필집도 친척이 참여한 것이다. 위명래는 상중이라 서명을 하지 않고 단지 ‘상불착(喪不着)’이라고만 기록하였다. 이는 상중에는 경제행위를 금하는 조선시대의 관행이다. 매매가는 27냥이었다. 【기타】 전답을 매입한 위정수(1743~1811)는 순천(오늘날 여수시 해당) 율촌면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世居)한 장흥위씨(長興魏氏)가 인물이다. 율촌면 봉두마을이 여수의 대표적 장흥위씨 집성촌이다. 위정수는 위효징의 직계 주손(胄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