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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구입 756

명칭

1809년 위치흥이 위정수에게 전답을 방매한 명문

이명칭

명문, 明文, Land Dealing Document (Myeongmun) Issued by Wi Chiheung to Wi Jeongsu, 1809

국적

한국 > 조선

시대

1809.3.12.

작가-
재질

종이

크기

가로 44.2cm, 세로 38.1cm

공공누리 1유형

국립세계문자박물관 1809년 위치흥이 위정수에게 전답을 방매한 명문 저작물은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소장품 이미지

설명

위치흥이 위정수에게 전답을 방매(放賣)한 계약문서. 1809.03.12.(嘉慶十四年己巳三月十二日). 낱장(전1장). 표기문자 한자 및 이두. 인장 없음. 순천부(順天府) 율촌면(栗村面) 조촌(鳥村)에 위치한 텃밭[垈田] 3두락지(斗落只)와 초가(草家) 4간(間), 논 3두락지를 21냥에 방매하는 내용. 가대(家垈)주이자 논주인인 위치흥은 따로 증인을 두지 않고 본 명문을 직접 작성하였음. 동성 삼종형제 사이의 거래임을 확인할 수 있음. 좌측 하단 천공, 우측 일부 변색.

해제

【내용】 순조 7년(1807) 4월 위영조(魏榮祚)가 전답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계약문서이다. 위영조는 상속받아 갈아 먹던 땅을 다른 전답을 매입하기 위하여 이번에 팔게 되었다. 순천부(順天府) 율촌면(栗村面) 조지동(鳥旨洞) 손수동평(孫水洞坪)에 위치하고 있다. 토지대장에는 5부(負)로 등재된 논 2두락지(斗落只)를 팔고 20냥을 받았다. 매수인이 누구인지는 전혀 기록하지 않았다. 조선 말기가 될수록 이렇게 매입자를 기록하지 않은 토지매매 명문이 많이 전해진다. 즉 그 이전과 달리 매입자를 기록하지 않은 매매명문만으로도 거래가 유효해진 것이다. 본 문서는 논주인 위영조가 직접 작성하였으나 서명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따로 증인을 참여시키지도 않았다. 조선 말기의 허술해진 토지매매명문 관행이 드러난 자료이다. 【기타】 순천(오늘날 여수시 해당) 율촌면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世居)한 장흥위씨(長興魏氏)가의 전답매매명문 가운데 한 점이다. 따라서 본 전답을 이번에 혹은 이후에 사들인 사람이 위씨가 인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