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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조회

등록번호

구입 765

명칭

1907년 유민렬이 토지를 방매한 명문

이명칭

명문, 明文, Land Dealing Document (Myeongmun) Issued by Yu Minryeol, 1907

국적

한국 > 대한제국

시대

1907.7.3.

작가-
재질

종이

크기

가로 31.0cm, 세로 29.5cm

공공누리 1유형

국립세계문자박물관 1907년 유민렬이 토지를 방매한 명문 저작물은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소장품 이미지

설명

유민렬이 토지를 방매(放賣)한 계약문서. 1907.07.03.(光武十一年丁未七月初三日). 낱장(전1장). 표기문자 한자 및 이두. 인장 1과. 여수군(麗水郡) 율하(栗下) 상려(上呂)의 정자 고개 땅을 50냥에 방매한 내용. 토지의 면적은 따로 밝히지 않고 양산(養山) 전면(全面)이라고 표현하였음. 매수인은 기록하지 않음. 증인이자 문서 작성자인 필집(筆執) 조덕장(趙德章)임. 우측 하단 결락, 우측 상단 미세 천공 있음.

해제

【내용】 광무 11년(1907) 7월 초3일 유민렬(柳敏烈)이 산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계약문서이다. 전 감찰(監察) 유민렬은 이장(移葬)을 위해 할머니 정씨(鄭氏)의 묘가 있는 산을 팔게 되었다. 여수군(麗水郡) 율하(栗下) 상려(上呂)의 정자 고개가 그 땅이다. 면적은 따로 밝히지 않고 양산(養山) 전면(全面)이라고 표현하였다. 값은 50냥을 받았다. 매수인은 기록하지 않았는데, 조선 말기의 토지매매명문에서는 이와 같이 종종 사는 이를 쓰지 않는 경우가 나타난다. 산주인은 조선시대 서명 방식인 착명(着名) 대신 인장을 찍었다. 증인이자 문서 작성자인 필집(筆執)을 겸한 조덕장(趙德章)은 여전히 착명을 하였다. 거래된 땅의 이전 소유권 변동, 즉 매매나 상속 관련 문서를 본문기(本文記) 혹은 구문기(舊文記)라고 지칭하는데, 본문에서는 신구문(新舊文)을 함께 넘겨준다고 다소 모호하게 기록하였다. 이전 시기에 비해 기록의 엄밀함이 많이 약화된 토지 거래 관행이 드러난다. 【기타】 1907년 7월 19일에 고종은 순종에게 양위하였으므로 그 며칠 전에 작성된 본 문서는 융희(隆熙) 1년이 아니라 광무 11년으로 기록되었다. 본 명문의 수취인은 누락되었으나 여수 장흥위씨가 토지매매명문 일괄문서 가운데 한 점이므로 결국 장흥위씨가 인물이 매입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