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조회
| 등록번호 | 구입 767 |
| 명칭 | 1911년 강창회가 전답을 방매한 명문 |
| 이명칭 | 명문, 明文, Land Dealing Document (Myeongmun) Issued by Gang Changhoe, 1911 |
| 국적 | 한국 > 일제강점 |
| 시대 | 1911.4.19. |
| 작가 | - |
| 재질 | 종이 |
| 크기 | 가로 49.0cm, 세로 21.8cm |
설명
강창회가 전답을 방매(放賣)한 계약문서. 1911.04.19.(明治四十四年辛亥四月十九日). 낱장(전1장). 표기문자 한자 및 이두. 인장 2과. 여수군(麗水郡) 율촌면(栗村面) 역화촌(逆花村) 앞 석교평(石橋坪)의 논 1두락지(斗落只)를 35냥에 방매하는 내용. 토지대장 상으로는 인(人) 자호(字號)에 등재되었고 1부(負) 3속(束)의 면적에 해당함. 매수인은 기록하지 않음. 논주인 강창회와 증인 겸 문서 작성자인 필집(筆執)으로 참여한 김중현(金重鉉)은 모두 정방형 인장을 찍음. 전반적인 구김 있으나 상태 양호.
해제
【내용】 1911년 4월 19일 강창회(姜昌會)가 전답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계약문서이다. 강창회는 스스로 매득(買得)하여 여러 해 동안 갈아먹던 논을 형편상 부득이하여 이번에 팔게 되었다. 여수군(麗水郡) 율촌면(栗村面) 역화촌(逆花村) 앞 석교평(石橋坪)의 논 1두락지(斗落只)가 그 땅이다. 토지대장 상으로는 인(人) 자호(字號)에 등재되었고 1부(負) 3속(束)의 면적에 해당한다. 값은 35냥을 받았다. 매수인은 기록하지 않았는데, 조선 말기의 토지매매 명문(明文)에서는 이와 같이 종종 사는 이를 쓰지 않는 경우가 보인다. 논주인 강창회와 증인 겸 문서 작성자인 필집(筆執)으로 참여한 김중현(金重鉉)은 모두 정방형 인장을 찍었다. 조선시대에는 당시 서명 방식인 착명(着名)을 하거나 글을 모르는 경우 손가락 마디나 손바닥을 대고 그렸다. 인장은 신분이 높은 여성이 사용하나 이 경우에도 주묵(朱墨)은 사용할 수 없었다. 거래된 땅의 이전 소유권 변동, 즉 매매나 상속 관련 문서를 본문기(本文記) 혹은 구문기(舊文記)라고 지칭하는데, 이 거래에서는 구문기가 3두락의 전답을 아울러 기록하고 있으므로 반을 잘라 본 명문인 신문(新文)과 함께 넘긴다고 명기하였다. 【기타】 수취인은 누락되었으나 여수 장흥위씨가 토지매매명문 일괄문서 가운데 한 점이므로 결국 장흥위씨가 인물이 매입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