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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구락부

전거유형

단체

대표명

계명구락부

대등명

啓明俱樂部 Kyemyŏng Kurakpu Kyemyŏng-Kurakpu Kyemyŏng kurakpu

비대표명

-

ISNI

0000000492816030

존립기간

-

존속여부

폐지

개요

한국문학 사회문화 문화·예술단체

소재지

-

단체연혁

1918년 서울에서 결성된 계명구락부는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이 주도한 대표적인 애국 계몽단체였다. 최남선, 오세창, 박승빈, 이능화, 문일평 등 당대의 문화·학술 인사 33명이 뜻을 모아 설립하였으며, 우리 민족의 학술 연구와 문화 진흥을 통해 사회를 계몽하고 구성원 간의 교류를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이 단체는 언어와 예절, 복식과 식생활 같은 일상적 영역의 개선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고, 이러한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각종 서적과 잡지를 간행하였다. 구락부 내부에는 일반인에게 개방된 도서실이 있어, 신문과 잡지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었으며, 임시 강연회나 문화 행사를 열어 지식 보급에도 힘썼다. 단순한 모임을 넘어, 근대적 학술 단체로서의 성격을 갖추었던 것이다. 특히 계명구락부는 잡지 《계명(啓明)》을 통해 학문적 성과를 꾸준히 발표했다. 이 잡지는 남상일이 발행인으로 참여하여 1921년 5월 창간, 1933년 1월 제24호까지 이어졌다. 《계명》에는 최남선의 〈삼국유사해제〉, 이능화의 〈조선무속고〉와 〈융만교차기〉, 오세창의 〈근역서화징〉, 김시습의 〈금오신화〉 등 귀중한 고전 연구가 실려, 우리 전통문화 연구의 초석이 되었다. 1927년에는 계명구락부의 주요 인물인 최남선, 정인보, 이윤재, 임규 등이 주시경과 이규영의 <말모이> 원고를 이어받아 《조선어사전》 편찬 사업을 시작했다. 이는 이후 조선어연구회(훗날 한글학회의 전신)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계명구락부는 단순한 계몽단체를 넘어 민족어 보존과 학문적 독립의 토대를 마련한 단체로 평가된다.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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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구락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