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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학서포

전거유형

단체

대표명

광학서포

대등명

廣學書鋪 Gwanghakseopo

비대표명

-

ISNI

0000000480251976

존립기간

-

존속여부

폐지

개요

한국문학 출판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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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연혁

1906년 4월, 광학서포(廣學書鋪)는 문명개화와 국권회복을 내세우며 설립된 출판사로, 근대적 교과서와 계몽서적의 보급을 통해 민중을 계도하려는 지식인들의 뜻이 모여 탄생했다. 설립취지서에는 “조선의 성질을 절충하고 동서의 서적을 참고하여 초등에서 고등 수준까지의 교과서를 집성해 널리 배포하겠다”는 목표가 명시되어 있었다. 이는 단순한 출판사업이 아니라, 근대교육의 확산과 민족정신 고취를 동시에 꾀한 민족 계몽운동의 일환이었다. 윤치호, 이상설, 남정철, 조경구, 김학진, 김진수, 임병항 등 당대의 개화파 지식인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같은 해 4월 29일 열린 임시총회에서 윤치호가 회장, 김종한이 사장으로 선출되었다. 광학서포는 개화기 지식층의 대표적인 출판기관으로 자리 잡았으며, 애국사상과 실용적 지식을 담은 교과서와 서적들을 꾸준히 간행했다. 1907년에는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와 『귀의 성』, 신채호의 번역서 『이태리건국삼걸전』, 장지연의 『애국부인전』 등 당대의 대표적인 근대문학 작품과 계몽서들을 잇따라 출판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08년에는 판매 목록에 37종의 서적이 수록될 정도로 규모가 확장되었으며, 역사·지리·어학·법률·윤리·교과서류 등 교육 중심의 도서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일제강점 이후 검열과 압수, 발매금지 조치가 이어지면서 광학서포의 출판활동은 제약을 받았다. 개화기에는 교육과 계몽의 최전선에 섰던 이 출판사는 점차 한문고전류와 구문화 중심의 서적으로 방향을 바꾸었고, 결국 1910년대 말 무렵 폐업에 이르렀다. 약 100여 종의 도서를 출판한 광학서포는 회동서관, 중앙서관, 박문서관 등과 함께 근대 한국 출판문화의 토대를 마련한 대표적 계몽출판사로 평가된다.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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