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륭제
| 전거유형 | 인물 |
| 대표명 | 건륭제 |
| 대등명 | 건 륭제 乾隆帝 乾 隆帝 乾, 隆帝 Qianlong Qian long Qiánlóng Dì Qing Gaozong |
| 비대표명 | 고종 청고종 청 고종 홍력 弘曆 Hónglì Hung Li 애신각라홍력 애신각라 홍력 십전노인 순황제 |
| ISNI | 0000000108570110 |
| 생몰일자 | 1711.09.25 ~ 1799.02.07 |
| 생존여부 | 사망 |
| 성별 | 남성 |
| 국적 | 중국(청나라) |
| 본관 | 만주족 아이신기오로 |
| 직업 | 정치인 황제 |
| 주요직책 | 17351018~17960209 청나라 제6대 황제 1796~17990207 태상황 |
| 개요 | 1711년 베이징 자금성에서 옹정제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건륭제(乾隆帝, 1711~1799)는 청나라 제6대 황제로, 이름은 애신각라 홍력(愛新覺羅 弘曆)이다. 1733년 사실상 황태자로 인정받았으며, 1735년 옹정제가 붕어하자 25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연호를 ‘건륭(乾隆)’이라 정했다. 그는 부친이 정비한 중앙집권 체제를 이어받아 통치 기반을 강화하고, 효율적인 관료제 운영을 통해 제국의 황권을 확립하였다. 그의 치세는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이 절정에 달한 시기로, 강희제와 더불어 ‘강건성세(康乾盛世)’라 불리는 청 제국의 전성기를 완성하였다. 1750년대에는 준가르와 회부를 정복하여 신장 지역을 병합했고, 티베트와 대만, 버마, 베트남 등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였다. 이로써 청 제국은 동서남북으로 국경이 안정된 거대한 다민족 제국의 형태를 이루었다. 문화적으로는 학문과 예술을 적극 후원하였다. 특히 대규모 문헌 정리 사업인《사고전서(四庫全書)》의 편찬을 명하여 중국 고전 문헌을 집대성하였으며, 동시에 사상 검열을 강화하여 반청 사상의 확산을 억제하였다. 시문과 서화에도 조예가 깊어 스스로 수많은 시를 지었으며, 서양 화가 랑시닝(郎世寧)을 비롯한 궁정 화가들을 후원하여 동서양 예술의 융합을 이루기도 했다. 1780년대 이후에도 그는 외교적으로 조선, 티베트, 서남 아시아 등과의 관계를 유지하였다.그러나 말년에는 환관 화신(和珅)이 권력을 농단하며 부패가 만연하였고, 전쟁과 사치로 인해 재정이 악화되는 등 장기 집권의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795년, 건륭제는 조부 강희제의 재위 기간을 넘지 않기 위해 스스로 황위를 아들 가경제(嘉慶帝)에게 양위하고 태상황(太上皇)의 지위로 물러났지만, 실권은 여전히 유지하였다. 그는 1799년 88세로 세상을 떠나, 청 제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제국의 중심에 있었던 군주로 남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