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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

전거유형

인물

대표명

고봉

대등명

高峰

비대표명

원묘 原妙 고봉원묘 고봉 원묘 서봉 西峰 高峰原妙

ISNI

-

생몰일자

1238.12.01 ~ 1295.12.01

생존여부

사망

성별

남성

국적

중국(남송 말기 → 원(元)나라)

본관

-

직업

승려

주요직책

1257 항저우 정자사에서 3년간 선객으로 참선에 몰두함 1279 천목산에 사관을 세워 간화선을 지도함 1291 대각선사 건립자

개요

고봉 원묘(高峰原妙, 1238~1295) 선사는 송나라와 원나라가 교체되는 격동의 시기에 등장하여 남방 선종의 기운을 되살리고 간화선을 크게 일으킨 대표적 선승이다. 그는 15세에 출가하여 처음에는 불교 교학을 익혔으나, 곧 선(禪) 수행이야말로 생사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길임을 확신하고 참선에 몰두했다. 항주의 정자사와 천녕사 등지에서 여러 고승들을 친견했으며, 특히 임제종 양기파의 설암 조흠(雪岩祖欽) 선사 문하에서 깨달음을 성취하여 정통 법맥을 이었다. 남송이 멸망하던 1279년 무렵 절강성 천목산에 들어가 ‘사관(死關)’을 세우고 정진하였다. 원묘는 토굴에 머물며 15년 동안 산문을 나서지 않겠다는 엄격한 서원을 세우고 오직 화두 참구에만 전념했다. 이러한 수행은 당대와 후대의 구도자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고, 그는 수행의 요체를 ‘대신근(大信根), 대의정(大疑情), 대분지(大憤志)’라는 ‘삼요(三要)’로 정리해 제시했다. 이는 참선을 단순히 화두를 붙잡는 차원을 넘어, 확고한 믿음과 간절한 의심, 그리고 깨달음을 향한 굳센 분발심이 반드시 갖추어져야 함을 밝힌 것으로, 이후 선종의 수행 원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원묘 선사는 1295년 입적할 때까지 수많은 제자와 구도자를 지도했으며, 그의 법문과 편지를 모은 『선요(禪要)』는 사후 간행되어 간화선 수행의 핵심 지침서로 널리 읽혔다. 원 인종은 그에게 ‘보명광제선사(普明廣濟禪師)’라는 시호를 내렸고, 당대의 승려와 재가자들 사이에서는 ‘강남고불(江南古佛)’이라 불리며 깊은 존경을 받았다. 이처럼 고봉 원묘는 평생을 철저한 실참과 간화선의 확립에 바쳐 선종의 큰 줄기를 이어간 인물로 평가된다.

고봉